[21세기 준비] (36) 모든 것의 밑바탕에 <성찰>이 깔려 있는 시기
Journalist : 창조마을 | Date : 23/11/20 4:35 | view : 2600     
 

20세기가 제도권의 시기라면,
21세기는 제도권 밖에서도 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시기이다.

<제도권>이라 함은 <패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제도권>은
곧 해당 시스템에서 안정과 힘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치적 성향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다.

그렇다면, <제도권> 밖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이들은
과연 무엇에 근거하여 <제도권>을 벗어나서 일을 도모하는가?

한 마디로 <제도권>이 담아내지 못하는
가치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일을 도모한다.
그러므로,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적>이다.

21세기는 새로운 가치들의 향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영리적이든 비영리적이든 상관 없다.
그런 구분은 그저 방법론의 차이에 불과하다.

이렇게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의 사고
그 밑바탕에는 <성찰>이라는 기재가 작동하고 있다.
즉, 21세기가 <비제도적 성향>이 작동하고 있음에
그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찰>이다.

결론적으로 21세기는 이름하여 <성찰의 시기>이다.
20세기가 당면한 제도에 적응하여야
제 할 일을 도모할 수 있었다면,
21세기는 <성찰> 없이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찰>이란 과연 무엇인가?

사실 20세기에서도 <성찰>은 힘을 발휘하였다.
이른바 <성공시대>를 들춰보면,
그들 나름의 <특이성>을 발견할 수 있다.

<성찰>의 기본은 <뒤돌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일기>이다.
<일기>는 미래를 위한 계획이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회고이며 반성이다.

하지만, <성찰>은 <일기>보다는 더 깊고 넓은 실체가 있다.

물론, <일기>의 차원도 깊고 넓겠지만,
<성찰>은 <일기> 그 이상의 계를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개념적으로 그렇고, 또한 실체적으로 그러하다.

<일기>가 사건 중심적이라고 한다면,
<성찰>은 존재적이고 철학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성찰>은 어떤 단초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입체적인 사고의 과정이다.

예컨대, 아버지, 어머니를 그 대상으로 할 때,
<일기>와 같은 <기록적 차원>은
아버지, 어머니로서의 <관계적 차원>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그러나 <성찰>은 보다 근원적 차원으로써,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기 때문에
한 남성, 한 여성으로서의 보다 다층적 차원을
개념적으로 해체와 통합의 연속으로 다룰 수 있다.

<제도권적 사고>라 함은
<제도권>이라는 환경적 전제 아래서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비제도권적 사고>는
어떤 전제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그리고 임기응변적으로 취사선택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전제 없는 것이 전제>라 할 수 있다.

<성찰>은 기본적으로 <깊이>를 중요시 하는 사고체계이다.

<깊이>가 부족하게 느껴지면,
<성찰>의 범주 밖에서 쉽게 주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21세기 음악은 음악대로,
그 노래가 노래하는 바를 깊이 있게 다루어야 한다.
즉, 성찰적 연주가 되지 않으면,
다시 불려지기 어렵다.

미술은 미술대로
성찰적 작품이 되지 못하면,
다시 말해서, 보는 이에게 성찰의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외면받기 십상이다.

요즘 인터넷 시대에는
데이터가 넘쳐나고, 지식이 넘쳐나고, 기회가 넘쳐난다.
그래서, <성찰>은 더더욱 빛이 난다.

상품기획을 할 때에도
단순히 기능이나 감성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기능은 기능대로 깊이가 있어야 하며,
디자인은 디자인대로 성찰적 깊이로서 더하지 못하면,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뽑내기 어렵다.

시사적인 이슈들을 살펴보자면,
416 세월호 사건이나,
1029 이태원 사망 사고 등의
사후처리 과정을 예를 들 수 있다.

정부나 관련단체들의 반응은
그저 사건을 빨리 종결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은 사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였다.

이와 관련한 뉴스미디어의 반응도 이색적이다.
마치 이들이 더 많은 보상을 받으려 한다거나,
정치적 이슈화 하려 한다는 보도들이다.

뉴스미디어의 최소한의 책무는 저널리즘이다.
저널리즘이란, 6하원칙에 따른 사건의 자초지종을 살피는 일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건들에 대한 최속한의 <성찰>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서, 피해자 가족들의 요구는
<성찰의 기재>가 작동하기를 원한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한 당사자가 그 <성찰>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성찰>의 첫 단추는 <다시 들여다보기>인데,
그것이 불편할 따름일 것이다.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에서도
<성찰>은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의 좋은 추진체가 된다.
<성찰>의 기본기는 다양한 관점을 사용하여 재조명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시각/관점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21세기가 왜 <성찰의 시기>인지
더 많은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우리가 <성찰의 기재>를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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