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준비] (24) AI 시대가 대신 할 수 없는 `자전적 경험`으로 승부하라
Journalist : 창조마을 | Date : 23/04/24 0:32 | view : 13945     
 

챗(Chat)GPT로 회자되고 있는
대중적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
사람들에게 AI가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있다.

물론, 뭐든지 유행과 새로움에 빨리 반응하는
얼리어뎁터(Ezrly Adapter)가 있는가 하면,
주위에서 어떤 난리를 쳐도 꼼짝 않하는
후기사용자(Late Users)들이 있다.

이런 담론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회자되었다.
여기서 <디지털>이라함은 <미디어 담론>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미디어(media)라는 단어 자체가
Medium(매체)의 복수 명사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즉, 미디어는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한
<과정적 담론>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살면서
당면한 새로운 담론의 핵심 키워드는
<직접>과 <간접>의 맥락이다.

여기서는 지면상의 이유로 바로 결론만 언급하자면,
모든 것이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전환된다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서
우리는 개인의 <자전적 경험>을 등한히 여기게 된다.

가장 첨예한 예가 AI 대중화의 첨병인 ChatGPT이다.

챗GPT는 사용자가 원하는 키워드만 입력하면,
그것이 수필이면 수필로서,
시라면 시로서,
그림이라면 그림으로서
반응/출력하는 미디어이다.

그 놀라운 퀄리티에 놀라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회자되고 있다.

독일 출신 사진작가 보리스 엘다크젠(Boris Eldagsen)의 <전기공>이
‘2023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Sony World Photography Awards)’
크리에이티브 오픈 카테고리 부문에서 1위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그는 수상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수상작이 자신이 직접 찍은 작품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임을 밝혔다.

또한 엘다크젠은
“AI 이미지가 사진의 영역에 포함될 수 있는 지를 두
 폭넓은 토론을 촉발시키기 위해 작품을 냈다”라고 출품 의도를 설명하며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준 주최 측에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즉, 엘다크젠은
AI의 생산물이 과연 작가주의, 저널리즘, 사상적 흐름, 사조 등의
<자전적 경험>과 어떤 개연성이라도 있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작금의 <디지털 컨버전스>의 필요성은
단지 그 <결과적 담론>에서 언급될 뿐이다.
다시 말해서, <결과가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주도하는 20세기의 100년을 산 인류는
그 <과정>에서 <누락되고>, <상실되고>, <버려지는>
우리 <인간학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웠다.

아무리 좋은 퀄리티의 생산물일지라도
그것이 <나와 상관 없다면> 그것에 대한 <가치담론>은 무색할 뿐이다.
<디지털 컨버전스>에서는 <도구적 담론>으로 실용성에 기여하겠지만,
엘다크젠이 제기한 문제제기처럼,
상당수의 몇몇 상황에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가치담론>들이 있다.

누군가가 ChatGPT를 이용해서
수 많은 <선택>이라는 <노력>의 결과로서 이미지를 출력해서
그것을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때,
거기에서 우리는 어떤 <자전적 경험>에 의한 <작가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천민자본주의처럼 자본의 논리로서
그것이 <얼마에 팔렸다>는 마케팅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현상일 뿐이지,
어찌 없는 경험을 있다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20세기가 실존주의의 태동과 함께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존주의는 그 어떤 논의나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에 처한 우리들의 <실존>은 남아 있다는
철학적 각성에 깃발을 내걸었다.

대중들이 20세기라는 100여년의 <자전적 경험>을 통해서
습득한 학습효과가 없다면 아마도 그 <실존>은 망각되어 소실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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