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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해] 북미정상회담이 취소 된 것을 통해서 본 미국
Journalist : changjo | Date : 18/05/25 11:21 | view : 374740
 

오늘 북미정상회담 취소가 발표되었다.
가능성으로만 보자면 '취소'가 명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교적으로 이 정도의 의사표명은 '취소'를 명시화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오늘의 < 북미정상회담 취소 > 를 통해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좀 더 이해해보려 한다.

먼저, 우리가 간혹 '외교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표현의 의미는 대부분 '은유적 표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의미를 전달함에 있어서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를 꺼려한다. 이를 우리는 '외교적 표현'이라고 사용한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 이유는 오히려 국가간 약속이나 거래에 있어서는 더 명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물론, 조약이나 서약 등에서는 당연히 문서화 하고 이를 명시적 표현으로 작성한다.
그러나 그런 결과가 나오기 이전까지는 오히려 그 반대로 '은유적'이거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그 표현으로 말미암은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어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것이다.
끝까지 자국의 이익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상대국에 대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적절한 상황이 될 때, 그 '외교적 표현'을 적절히 사용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런 '외교적 표현'이라는 것은 사실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아시아계는 오히려 화끈하다. 오히려 O, X 가 분명하게 표현된다. 완전히 사기를 칠 지언정 나중을 보면서 지금 '은유적 표현'을 포석으로 깔아두는 짓은 소위 '군자'의 행로가 아닌 것이다. 그런 '짓'은 관계보다는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인배가 하는 짓거리와도 같은 모습이다.

그렇다면, 소위 말하는 동서양(사실, 이표현은 서구 중심적 표현이다)의 차이가 왜 나타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고방식'의 차이이며, 이 '사고방식'이라는 것은 오랜 역사 를 지니고 있다. 민족이나 국가적 차원에서는 '역사'이고, 개인적 차원에서는 '생활방식'이다. 다시 말해서, '사고방식'은 주욱 그렇게 '살아온 궤적'을 반영한다.
보다 쉽게 말하면, 내가 무엇을 추구하면서 살아 왔는가에 의해서 그 생각은 어떤 '틀'을 지니게 된다. 그 '생각의 틀'을 '사고방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럽은 시스템과 룰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떤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의견을 제시하면, 그 '타당성 검토'에 의해서 거의 결정이 된다.
그 좋은 예가 현대 정주영 회장이 처음 현대조선소를 일으킬 때,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얻으려 했는데, 추천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영국의 선박 컨설팅회사인 애플도어사의 롱 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하지만, 선박건조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기술을 믿을 수 없어서 거절당했다. 그 때, 정주영 회장은 지갑에서 '5백원짜리 지폐'를 꺼내 놓고는 '우리나라는 영국보다 300년 앞서서 철갑선을 만든 조선 강국이다.'고 했다. 롱 바텀 회장은 그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고 대한민국의 400년 전 조선기술을 믿고 추천서를 써주었다.
사실 그 때 현대중공업은 배를 만들 도크도 없었다. 한 마디로 만들 수 있는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계약서를 쓰자고 달려든 것이다. '너희(그리스 선박회사)가 계약서를 써주면 그 계약서를 가지고, 영국 은행에서 그 계약서를 담보로 돈을 빌리겠다는 계획이었다. 거의 사기 수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리스 선박회사를 소개해 준 이도 바로 그 '거북선' 그림에 설득된 롱 바텀 회장이었다.
황당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이 거북선 얘기는 실화다. 결국, 그리스 선박회사로부터 2척의 유조선 계약서를 따냈고, 현대조선소가 탄생하였다. 롱 바텀 회장의 판단은 감이 아니라, '논리적'이었다. 어찌보면 동화같은 이야기 같지만, 유럽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논리적으로 영국보다 300년 앞선 조선기술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유럽의 사고방식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약자여도 '타당성'을 들이대면, 그 '타당성'으로 판단하고 반응한다.

반면에 미국은 '개척의 땅'이라는 것이 미국식 사고방식의 궤적을 가장 잘 설명해 준다.
'개척의 땅'이라는 것은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먼저 깃발을 꽂는 놈이 차지한다는 논리이다. 그 지리적 환경이 미국식 사고방식을 탄생시킨 배경이다.
이익과 결과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것은 철저한 '실용주의'에 근거한다.
그래서, 미국은 '여론'이 중요한 나라다.
그 추구하는 가치나 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선택을 하면 그것이 가치가 되는 나라이다.
혹시 그 여론을 무릅쓰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 만한 보이지 않는 실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국전쟁이 1.4 후퇴로 무너진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참고로, 미국의 프로야구에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계 선수들을 주목하면, 비슷한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몇 몇 감독들의 경우 설령 팀이 그 경기에 지더라도 '내가 옳으면 된다는 식'의 선수운용이다.
이번 트럼프의 북미정상회담 취소 결정도
LA 다저스의 감독과 같은 성격의 판단이라고 본다.
LA 다저스의 로버츠 감독은 작년 포스트 시즌에서 류현진의 선발 출전에 의구심을 가졌다. 류현진의 선발 출전을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은 허니컷 투수코치다. 그는 로버츠 감독이 보지 못한 류현진의 포스트 시즌 투구를 본 사람이다. 류현진은 큰 경기에 더욱 강해지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작년에 정규시즌의 엄청난 성적에도 불구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 다른 것보다도 선발이 불안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류현진의 공백이 보인다는 이야기고 그 말은 로버츠 감독에게 공이 넘어가게 된다.
2018년 LA다저스의 성적부진에도 불구하고 LA다저스 단장은 로버츠 감독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였다. 이 제스추어는 로버츠 감독에게 현재의 성적은 LA다저스 단장까지 나서서 지지를 보여 줄 필요가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대변한다. 로버츠 감독을 복잡하게 하는 또 하나의 선수는 일본의 마에다 투수다. 마에다 역시 로버츠 감독에게는 그냥 단순히 좋은 성적만 내면 되는 선수가 아니다.
마에다를 불신하여 류현진과 함께 불펜으로 사용했던 선수이다.
올해는 마에다가 작년보다 좋은 모습이다.
5월18일에는 마이애미 원정에서 8이닝 8K 무실점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그날 투구수는 96개,
마에다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 최초의 완봉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투구수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7:0 스코어로 승리에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로버츠 감독은 마에다에게 완봉승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투수에게 완봉승의 커리어 기록은 중요하다.
로버츠 감독 입장에서 마에다의 완봉승 기록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이 된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미국사람들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이며 철저한 프래그머티즘이다.
개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이 만나면 동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번 427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온 세계 외신기자들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면서
'과연 이런 광경이 가능한 것인가?'라며,
동화의 세계에 온 것 같은 환희를 느꼈다.

트럼프는 이 광경을 어떻게 지켜봤을까?

만약에 동화가 되어야 한다면,
그 동화의 주인공은 바로 '나, 트럼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522 한미정상회담에서 문제인 대통령에게 트럼프가 한 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지금 대통령이 문제인이라는 것이 참 다행일 것이다.'
이는 '칭찬'이라기 보다는 '시기'에 가깝다고 본다.
트럼프가 문제인을 칭찬할 이유도 없지만,
트럼프 자신이 문제인 대통령의 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도보다리 회담에 대해서 가장 충격을 받았을 두 정상은 시진핑과 트럼프였을 것이다.
시진핑은 흉내도 내 봤다.
하지만, 통역이 필요 없는 문제인-김정은 커플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427 남북정상회담 이후 문제인의 의견을 계속 청취해야 했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래야 할지 모른다.
바로 이 지점이 트럼프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이는 단지 주도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대북 강경책을 썼던 트럼프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 주 북한의 강한 불만과 반발에 대해서
처음에는 트럼프가 회담이 결렬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강경한 비핵화 태도를 조금 느슨하게 언급하는 것으로 북한을 달래려 하였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 회담을 치루게 되면,
지금까지 미국과 트럼프가 취했던 강경책의 가치가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면, 트럼프가 612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될지는 몰라도,
그 동안의 강경책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비판도 함께 짊어져야 한다.
만약에 트럼프가 유럽 어느나라의 지도자였다면, <한반도 비핵화와 세계평화에 기여>로 충분히 만족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미국인 트럼프는
한반도 비핵화와 세계평화보다는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트럼프 입장에서 차기 대선과 관련해서도
바로 '나의 판단은 옳았다'는 것으로 승부수를 낼 것이다. 이것이 미국식이다.

다시 427 남북정상회담으로 돌아가 트럼프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테이블로 나온 것은 자신의 '강경책이 효과를 보인 것'이라고 평가를 했었다.
지금도 트럼프에게는 그 생각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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