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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 문화다양성 함양과 21세기 경쟁력
Journalist : changjo | Date : 14/02/04 14:34 | view : 149178
 

에디슨이 한 말 가운데,

'1%의 영감과 99%의 노력'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한 해석도 여러가지로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1%의 영감'이 곧 '창의력'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창의력이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창의력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그 소양을 배양할 수 있는지가

21세기 무한경쟁 사회에서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창의력이라는 것이 '순간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는 것으로는 창의력을 내것으로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혹자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필요한 상황에 관련된 지식이 생각나는 것으로 창의력을 설명합니다.

그 말도 크게 보면 틀린말도 아닙니다.





2005년 유네스코에서 회원국간

'문화다양성 협약(The Protection of Cultural Contents and Artistic Expressions)'을 하였습니다.

그 취지를 요약하자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목적으로 한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한경쟁이라는 약육강식의 환경에서든,

상대적 약자를 대하는 이기적 태도에서든,

'다른 것'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일반에 대한 반성인 것입니다.



인류사에서 약육강식이 세상을 뒤덮었던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미션(The Mission)이라는 영화에서

원주민 과라니족을 대상으로 한 재판이 이뤄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재판의 내용은 과연 '과라니족'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회 신부는 원주민에게 가르쳤던 노래와 악기 연주를 선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 원주민 과라니족과 함께 예수회 신부들도 몰살당합니다.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은

바로 이렇게 인류사에서 드러난 대 참사에 대한 반성을 포함해서

개개인간에 발생하는 문화적 충돌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성에서 더 나아가 다양성에 대한 가치전환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다양하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량생산이라는 것은 '정해진 생산 시스템'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요구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회가 점점 획일화되는 경향으로 나아갑니다.

혹자는 이를 '국제주의적 양식'이니, '글로벌 문화'니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모든 사람들이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은

코카콜라 사람들과, 맥도날드 사람들 뿐 아니겠습니까?



한국에서는 수정과와 식혜를,

중국에서는 보이차와 두부를,

불가리아에서는 요구르트를,

스위스에서는 치즈를,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독일에서는 맥주를, 맛보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것 아니겠습니까?

아! 독일의 맥주는 지역별로 다른 맛을 또 다른 풍미거리로 자랑합니다.



다양성은 이렇게 서로의 가치를 즐깁니다.

다른 것을 향해서 내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문화다양성을 함양한다는 것은

'나와는 전혀 다른 것에서도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깨닫고 그 능력을 키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화다양성 함양이 창의력 배양과 연결이 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아는 것과는 다른 가치를 볼 줄 아는 능력,

그 가치가 내 것과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비슷한 지를 아는 능력,

다시 말해서, 내것과 다른 것과의 관계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것을 통해 나의 것을 확장할 수 있는 능력,



나와 다르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내게는 도전적이고 이질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것에 대한 태도가 경직되어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모르는 것 만큼 두려운 것이 없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회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내 안에 있는 것 또한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가치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안에 있는 것의 가치조차

사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히려, 내 안에 있는 것의 가치는

다양한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서 새롭게 인식되고 확인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차피 내 안에 있는 지식이나 능력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새로워지는 것이라면,

다른 것과의 관계를 회피하거나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창의력이라 함은 보다 적극적인 관계형성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창의력은 다른 차원의 조망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내 안에 있는 것을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새롭게 조망한다는 것이

바로 창의력 배양과 다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예술가들이 작품 활동을 잠시 접고

여행이나 일상을 떠난 일탈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그들은 다른 경험을 통해서 작품에 활용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한 한국화가는

아프리카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한국화를 그립니다.

그러나, 분명한 아프리카 문화가 그의 작품에 젖어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보고

혹자는 '변질'이라 할테고, 또 혹자는 '변모'라고 할 것입니다.

전자는 한국화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지적일테고,

후자는 한국화의 새로운 발전가치에 기여하였다는 의미일테죠.



그 변화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이든간에,

내것의 발전 아이디어는 타자와의 관계,

다르고 이질적인 것과의 만남과 융화를 통해서 일어나는

내 안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어떤 움직임, 에너지 같은 것이 있어야

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창의력은 과연 이 메카니즘 속에서 어떤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내 안에서 새롭게 조명되는 어떤 움직임, 에너지'

바로 이것을 창의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창의력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니, 문화다양성 함양이 바로 창의력 배양의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의력이라는 것보다 문화다양성 함양이

더 포괄적 소양을 말하고 있으며,

더 본질적 가치를 품고 있다 하겠습니다.



21세기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어차피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경쟁모드를 피할 수 없다면,

경쟁력의 중요 키워드인 창의력을 배양하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이곳 저곳에서 창의력을 외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창의력의 실체와 뿌리가

타자와의 긍정적이고 적극적 관계를 통해서 획득될 뿐만 아니라,

그 긍정적 관계는 나의 존재구조와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다시 말해서,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 그 모습'은

다름 아닌, 내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싫어하는 엄마의 패션 감각을 대하는 내 모습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언어 습관을 대하는 내 모습

이것이 바로 나의 실체인 것입니다.



창의력은 이렇게 대상과 떨어져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창의력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창의력은 언젠가 나쁜 결과를 낳고 도태될 것입니다.



진정한 창의력은 관계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결과로 얻습니다.

어쩌면 창의력은 경쟁력 그 이상의 '관계회복을 통한 부록'일지 모르겠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이 말은 이순신 장군의 말로 유명합니다.



그렇습니다.

21세기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창의력은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경쟁하고자 하면 진정한 창의력은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창의력은 타인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연관됩니다.

무한경쟁을 기정사실로 할 것이 아니라,

문화다양성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창의력과 경쟁력 배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다양성의 가치 안에서는 타인을 대상화하는 경쟁력이 아닌,

타인과 어우러지고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했던가요?



경쟁의 창의력을 사용하는 자는 타인의 경쟁의 창의력으로 넘어질 것입니다.

진정한 화합의 창의력을 사용하는 자는 함께 세워져 갈 것입니다.



이 즈음에서 정조대왕이 생각납니다.



그가 만약 아비(사도세자)의 죽음만을 생각하였다면,

정쟁의 사람들을 대상화 즉, 복수의 대상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대상화 하지 않았습니다.

속이 끓어 오르지만, 그들의 가치를 먼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끌어 안는 정치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창의력의 출발이며, 진정한 창의력의 결과입니다.



우리 각자의 위치에서 이렇게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아니, 우리 안에 문화다양성의 가치를 배양한다면,

우리 안에 창의력의 용솟음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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