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준비] (17)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Journalist : 창조마을 | Date : 22/12/29 18:57 | view : 1589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유명한 작품 [차이와 반복]에서
'일반성'과 '특수성'에 대한 담론을 설명한다.

쉬운 예를 들면,
'사과 10개'와 '배 5개'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할 때,
수학적 담론에서는 '일반성'을 택한다.
그래서 사과 10개 + 배 5개 = 15개의 식이 '성립'한다.

다른 한 편, 마케팅적 담론에서는 '특수성'을 택한다.
사과 1개의 가격과 배 1개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황에 따라서 각각 다른 '차이'를 지닌다.

즉, 담론에 따라서 텍스트(본문)는
'반복'을 의미하기도 하고 '차이'를 의미하기도 한다.

만약에 서로 다른 담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섞어버리면,
전혀 다른 의미를 얻거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망가트린다.

21세기는 이전보다 더욱 복잡한 사회이다.
우리가 이 '복잡한 상황'에서 '차이'를 구분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서 '핵심'을 붙잡는 일이 될 수 있다.

특히, 하이퍼텍스트 상황 속에서
'대중'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여전히 기존의 '대중매체'에서는
'차이' 없음을 택하고 '대중'을 부른다.

그 이유가 뭐가 되었든
그 '대중' 속에서 내가 발견된다는 사실은
너무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뢰즈도 언급한 것처럼,
개념은 일종의 '프레임'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마녀사냥', '인민재판' 등의 사례가 전형적이다.
그러나 그 경우 '불충분성'이 난무한 '반복'의 연속일 뿐,
그 과정에서 '지각'을 찾아보기 힘들다.

21세기 지금도 '마녀사냥'과 '인민재판'은 아주 쉽게 일어난다.
옛날의 '마녀사냥'이나 '인민재판'과 그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동일하게
죄 없는 이들이 '사회적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사회적 피해', 너무 어렵게 말을 했나? ^^
외면적으로는 공공연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은밀하게 진행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피해'이다.

'사회적 피해'는 '프레임'이라는 '언어적' 기재로 발생한다.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일이다.
지하철 '경로석'에 앉아서 가고 있는데,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아내를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는 '저 임신했어요~'라고 했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원래(?)' 경로석은 '노인들의 것'이라는 개념을 가졌을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임산부에겐 임신 초기가 더 조심해야 할 시기인데,
겉으로는 티도 안나니 할아버지들에겐 '공부(?)'가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내가 직접 '싸움'을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먼저, 할아버지의 높은 언성이 들리더니,
'내가 임신한 것을 왜 당신에게 알려야 하는데~~' 라는
한 여성의 외치는 소리와 함께
지하철은 다시 조용해졌다.

'개념'이라는 것은
어떤 가치나 논리적 결과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명사'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레임 효과'의 원형(prototype)이다.
그래서 '개념'을 알면 논리나 사고를 빠르게 전개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 '개념'의 '양태적 반복'을 무분별하게 적용할 경우
불필요한 마찰이 발생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긴다.

한 '개념'의 '양태적 반복',
즉 하나의 사건과 다른 하나의 유사한 사건의 '반복' 속에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개념을 '불충분하게' 사용하게 된다.

이 '불충분하게' 라는 표현은 들뢰즈의 용어를 사용한 것인데,
이 '불충분하게' 라는 표현이 양산하는 실제적 결과는 심각하다.

여기서 '소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지하철 사례에서는
'싸움'이라는 형식으로라도 '차이'를 발견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소문'의 전개 과정에서는
'차이를 발견하는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소문'을 공유한 '대중'들은
그저 '개념'을 '불충분하게' 사용하는 언어적 저능아들이다.

이들이 사회를 혼란으로 빠트리고,
21세기 마녀사냥이나 인민재판을 재현하는 파시스트들이다.

그들은 '차이'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발정난 개와 같다.

그 이유는 '개념'을 '욕망'처럼 빠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불충분하다'고 표현한 것이
얼마나 큰 욕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그냥 오지 않는다.
'여기'면 '여기',
'저기'면 '저기'.
그 수준만큼 오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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