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공간] 아파트 공간이 미치는 비인간화 효과(3)
Journalist : 창조마을 | Date : 21/12/05 4:34 | view : 66678
 

2. '이벤트'가 없는 아파트 공간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우리들에게 알려준
앙리 르 페브르는 '이벤트'라는 개념도 정리한다.

'이벤트'는 일상적이지 않지만,
일상의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일상의 참 의미를 새롭게 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건축적 공간에 있어서도 '이벤트'의 의미는 적용된다.
'이벤트적 공간'은 그 이벤트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일상적 공간'과 어우러져 '일상성'을 새롭게 하는 공간이 된다.

주거공간이 단독주택을 아파트와 같은 집합주거형태가 대체 하면서
주거공간의 본질적 형태가 사라지고 있다.

예컨대, 출생문화가 사라졌다.
주택에서 출생이 사라지면서 '출생지'라는 개념 희미해졌다.
'금줄'이라는 문화도 사라졌다.
아파트에서 '출생'은 병원에서 이뤄진다.

예컨대, 잔치문화가 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동네에 돐떡을 돌리지 않는다.
이제는 더 이상 동네 잔치가 일어나지 않는다.
아파트에서 '잔치'는 불가능하다.
아파트에서 '잔치'는 부폐나 외식 식당에서 한다.

예컨대, 결혼문화가 사라졌다.
집에서 치뤄졌던 '결혼식'은
이제는 결혼식장에서 이뤄진다.
전통혼례는 집에서 집으로, 집과 집에서 이뤄졌다.

예컨대, 장례문화가 사라졌다.
그 집에서 낳고 자랐던 이의 죽음이
이제는 병원 영안실에서 다뤄진다.
서양은 장례사에 의해서 집과 종교시설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기존의 단독주거형태에서는
생로병사의 모든 이벤트적 인생사가 '집'에서 치뤄졌다.
지금은 '생일축하'도 집 밖에서 한다.

아파트는 집 안으로 들어간 '부엌'이
충분한 조리시설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의 공간구조가 유기적이지 못하고 기능적으로 설계된 탓이다.
가정에 있어서 부엌이라는 조리시설은
단지 '식사'를 해결하는 기능적 장소가 아니다.
부엌에서는 식문화와 관련된 여러 '이벤트'가 치워진다.

부엌은 '부엌'이라는 제한된 공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김장철에는 배추와 무우를 쌓아 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김장철에는 배추를 절여 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김장철에는 가족이 모여 배추 속을 넣을 테이블이 놓여져야 한다.
김장철에는 팥죽이나 수육을 함께 나눌 이벤트적 공간이 필요하다.

김장을 한다는 것은 단지 '김치'를 마련함에 있지 않다.
김장은 가족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이벤트이다.
집에서 태어나고,
집에서 생일을 치루고,
집에서 감기를 앓고,
집에서 혼례를 치루고,
집에서 생을 마감하던 주거공간에서는
가족공동체라는 정체성 개념이 더 이상 추상적이지 않다.

시골마을에서 다 쓰러져가는 폐가를 허물지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이유는 그 집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텅 비어 있을 지언정
누군가는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지금은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더라도
누군가의 부모님이 살아계셨던 장소가 바로 그 집이기 때문이다.

'자서전'은 어떤 괄목할만한 큰 업적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보편적 일상성을 이벤트적 서사로 기록한 것이 '자서전'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거형태가 인생의 자서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일생이 추상화되어 사라지는 것 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집 밖에서 태어나고,
집 밖에서 잔치하고,
집 밖에서 결혼하고,
집 밖에서 생산을 대체하는 소비를 하고,
집 밖에서 생을 마감한다.
아파트 공간은 그저 잠만 자는 공간이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공간에 수 억을 쌓아 놓고 산다.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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