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God] '메타인지'의 발현을 통해서 본 기독교 영성
Journalist : 창조마을 | Date : 23/01/10 2:27 | view : 74
 

제도론적 환경인 20세기에서는
그 지식 또한 개인보다는 전체를 위해서 지식화 과정을 가졌다.

그 반향적 흐름으로
이른바 '21세기적 르네상스'가 지식화에까지 이르고 있다.

14~16세기 르네상스가
신중심 사고에서 인간중심 사고로
그 무게 중심을 옮겼다면,

21세기 르네상스는
제도론적 사회론에서 개인적 생태론으로 옮겨가고 있다.

예컨대, 14~16세기 르네상스가
그 사고의 무게 중심을 바꾸었을지언정
여전히, 전체론적 틀까지는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개인(personality)'이라는 개념이
지식화 과정에 들어오게 된 것은
'바로크Baroque' 이후로 논할 수 있다.

'권력'이라는 틀에서는
항상 '전체론적'이지 않을 수 없다.
권력구조가 전제군주제이든 민주주의이든
그 담론은 전체론적 사고라는 틀 안에 갇혀 있다.
(여기서 '전체론적 사고'를 '거시담론'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민주주의가 다른 것은 권력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차이이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기억해야 할 부분은
14~16세기 르네상스와 16세기 종교개혁이
동시대적으로 발현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14~16세기 르네상스가
여전히 전체론적 사고방식을 유지했지만,
그 반향적 흐름의 여러 갈래 중 몇몇은
'개인'이라는 개념에 이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16세기 종교개혁이다.
얼핏, 기독교가 로만 가톨릭에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 가치의 차이를 들여다보면,
전체론적 사고방식 속에서 개인적 사고방식이 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용어 자체가 전체론적 개념이다.
'보편', '전체' 등으로 사용된다.
즉, 'Catholic Church'라는 말 자체가
'단 하나의 교회', '단일/통일된 교회(Unity Church)'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여러 파는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단 하나의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에 의해서 기독교가 출현하는 것은
'Catholic Church'라는 전체론적 사고방식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이단적 출현'일 뿐이다.

'Catholic Church' 즉 '보편교회'라는 실체가
개념적 존재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전체적이어야 한다는
그 전체론적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다름'은 허락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Catholic Church'가 과연 단 하나의 '현실적 보편교회'였던가?
그렇지 않다.
'Catholic Church'가 'Roman Catholic Church'었듯이
'Catholic Church' 안에는 'Orthodox Church'도 있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서,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기독교의 발현이 'Catholic Church'의
개념적 존재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정치적 구조의 균열을 초래한 것 뿐이다.
교회가 이미 서방과 동방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16세기 종교개혁의 '개인 중심 사고'에 집중할 때,
우리는 기독교 영성의 '구원론적 사고'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로만 가톨릭의 구원론은 보다 전체론적이었다.
예컨대, 집단적 회심이 공공연히 일어났고,
미사 역시 집단적 틀을 돈돈히 하는 예배적 기재였다.
종교개혁의 단초가 되었던 '인덜전스Indulgence'의 판매는
또 다른 전체론적 사고의 개념이다.

이에 대하여, 마틴 루터로 시작된 '개인적' 사고방식은
'개인구원론'과 '만인제사장'으로 정리되었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 개인론'은 '개인적 권력구조'를 낳았다.

즉, 어떤 구조적 의존성 없이
현실 권력구조가 '개인화' 되는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16세기 종교개혁과 근대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이런 '개인중심적사고'는 키르케고르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는 철저히 주관적 담론의 전도사로서 연구에 임했다.
그 중심 개념은 '불합리 이론'과 '전율'이라는 '경험치'로 정리된다.

'불합리 이론'은 칸트의 '범주론'에 대한 반박이며,
'전율'은 칸트의 '범주론' 밖에서의 '경험치' 담론이다.

철학적으로는 '실존주의'의 발현을 언급할 수 있다.
합리주의의 관념론과 경험주의적 경험론의 간격을 줄이는 방법은
그 어느 한 쪽의 우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칸트의 인식론적 대전환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것은 '객관성'에서 '주관성'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를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일컫는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의 인식이 대상에 종속적인 것이 아니다.
즉, 인식된 대상이 이미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주관적 구성에 의해서 대상이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이다.

다만, 칸트는 범주론적 전제에 의해서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였다.
여기서 '인식할 수 없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하였다.

이 칸트의 표현에 대하여 키르케고르는 '불합리이론'을 주장한다.
즉, 칸트식 불합리를 극복하는 '전율'이라는 경험을 설명한다.

21세기는 이런 연속적 과정이
여러 깊이와 넓이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는 사회이다.
그래서 이 스펙트럼을 역사적으로 나열을 한다면,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간적으로 존재하는
이른바 '시간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미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어도 앞서 언급한 인식론적 전개방식 위에서 본다면,
보이는 대상에서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말 할 수 있는 것에서 말 할 수 없는 것으로,
신기한 것에서 인지 가능하고 설명 가능한 것으로
나아간다고 말 할 수 있다.

예컨대, 요즘 '메타인지'라는 말이
특히 학원가 교육 서비스와 관련하여 회자되고 있다.

'메타인지'란 '보다 나은 인지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일종의 'hyper-recognition' 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객관적 인지구조라기 보다는
주관적 인지구조에 해당한다.

그 인식의 대상 또한 추상적이다.
그리고 보다 내면적이고, 성찰적이다.
그리고 단독적이기보다 관계적이다.

기독교 영성과 관련해서
'메타인지'는 신앙의 성장패턴과도 연관된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성찰은 단독적(monad)이기 보다 관계적이다.
사람/교우들과의 관계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이다.

신앙의 대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
이것이 신앙의 내용인 동시에 신앙의 깊이를 좌우한다.
다시 말해서, '메타인지'적 방법론과
21세기까지의 인식론적 발전과정은 서로 맞닿아 있다.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면,
아마도,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실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보길 원하신다면,
아마도, 우리가 하나님을 인지할 수 있도록 도우실 것이다.

시대가 미래를 향하여 간다는 것은
단지 시간의 궤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이유를 향한 단계적 발걸음이 필수적일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궤적의 의미이며,
동시대적(contemporary) 담론의 발현은
이런 매락에서 의미 있게 활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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